한의사 장준혁/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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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혁한의원 2012. 3. 1. 12:11

‘한의학’ 영문으로 어떻게 표기하는 것이 좋은가 ? 
장준혁 국제이사(대한한의사협회)
<left></left>1. 들어가는 말 

약 50여년간 한의학은 영문으로 ‘Korean Oriental Medicine(약어 KOM)’ 또는 ‘Oriental Medicine(약어 OM)’으로 표기되어 왔는데 지난 2005년부터 이 영문 명칭이 발전하는 한의학의 이미지를 표현하지 못하므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왔다. 

이런 논란의 연장선에서 대한한의사협회는 회원 설문, 공청회 등을 거쳐 지난 2008년에 개최된 제53회 정기대의원총회에서 한의학의 영문명칭을 변경하는 안을 상정하였으나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아쉽게 보류된 바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개정된 한의약육성법에서 한의약의 개념이 새롭게 바뀌고 WHO(세계보건기구)와 ISO(국제표준화기구) 등에서 전통의학의 용어를 새롭게 정립하는 등의 변화가 있으면서 증가하는 국제교류에서 한의학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한의학의 영문명칭을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젊은 한의사들을 주축으로 하는 온라인에서 더욱 힘을 받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미국 및 캐나다 소재 대학의 학위와 일부 州의 면허증에 ‘Oriental Medicine’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 한의사 국가고시의 응시자격을 받을 수 있는지를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 질의하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이상과 같은 추세에 대해 중앙이사회에서는 전국이사회 토론을 거쳐 ‘한의학 영문명칭에 관한 건’을 이번 제57회 정기대의원총회 의안으로 상정하기로 하였다. 

2. 한의학 영문명칭 변경 논의의 경과 

전술한 바와 같이 이미 2005년경부터 한의학의 영문명칭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AKOM 한의마당에 개진되기 시작해서 논란이 있었고 대한한의사협회에서는 영문명칭 변경을 추진하기 위해 각종 사전작업을 진행한 바가 있었다.

먼저 2006년 7월에 한의학 관련 기관들에 질문지를 보내서 의견을 조회하였으며 동년 7월에 ‘한의학 영문명칭 개정을 위한 공청회’ 를 개최한 바 있다. 

당시의 공청회에서는 미국 하버드 의대 박종배 박사가 ‘한의학 영문명칭 변경방안 검토’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하고 한국한의학연구원 구성태 박사(한의학 영문명칭이 국제학계에서 갖는 의미),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민족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제언), 대한한의학회 김용석 국제교류이사(영문명칭 변경의 목적과 원칙), 대구한의대 채한 교수(용어와 한의학 세계화의 관계), 한국외대 박정운 영어학과 교수(영어 의미론적 관점에서의 한의학 영문명칭) 등이 참여해 ‘Oriental’ 명칭과 어원이 지니고 있는 대표성 문제, 용어의 모호성, 정체성 문제 등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하고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후 제16회 전국이사회(2007. 3)에서 명칭 변경에 따른 장·단점을 검토하고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등의 과정을 거친 후 제53회(2008) 정기대의원 총회에 상정 여부를 결정키로 하였고 이 결정에 따라 2007년도 국제위원회에서 2차례 논의한  결과 ‘Korean Medicine(KM)’을 변경 명칭으로 이사회에 제안하고 ‘Traditional Korean Medicine(TKM)’ 병용을 검토키로 결정한 바 있다. 

당시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응답회원의 59%가 명칭 변경의 필요성에 동의하였고 63%가 ‘Oriental’이 부적절하다고 응답하였다.
이상의 과정을 거쳐 결정된 안이 제53회 대의원총회(2008. 3. 16)에 의안으로 상정되어 찬반양론 속에 표결에 붙여진 결과 변경찬성 41표와 변경보류  79표로 ‘한의학 영문명칭 변경에 관한 건’은 보류되었다. 

3. 한의학 영문명칭 왜 변경해야 하는가 ? 

3-1 Oriental 이 가지는 의미의 부적절성  

현재 한의학 영문명칭에 쓰이고 있는 ‘Oriental’은 과거 서양에서 중근동의 이슬람을 지칭하던 말로 유럽의 서양에 대비한 동양의 개념으로 현대에 와서는 동양을 비하하는 용어로 인식되어 현재 서구에서는 사용을 자제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이미 2002년부터 미국에서는, 특히 워싱턴주에서는 법적으로 모든 공문서에 동양계를 비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Oriental’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되었는데 이 법에 따르면 워싱턴주에서는 각종 공문서에서 동양계나 동양인을 지칭할 때 ‘Oriental’ 대신 ‘Asian’으로 표기하도록 의무화했는데 그 이유는 “‘Oriental’은 지역적으론 런던의 동쪽이란 뜻이지만 그 안에는 코가 납작하고 눈이 작으며 머리가 까만 동양인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영국 제국주의시대의 경멸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특히 일본이 제국주의 팽창기에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하려는 의도에서 ‘동양의학(Oriental Medicin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이것이 식민지시대에 뿌리내려 현재까지 이어져온 일제 잔재의 하나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3-2 국내의 한의학 영문명칭 표기 

정부에서 한의학의 영문명칭을 표기하는 사례를 보면 보건복지부 영문 홈페이지에서는 한의학을 ‘Traditional Korean Medicine’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법제처 영문 홈페이지에서는 ‘한의약육성법’을 ‘Korean Medicine and Pharmaceutics Promotion Act’로 표기하고 있어서 정부에서 한의학을 지칭하는 영문명칭은 ‘Traditional Korean Medicine’ 혹은 ‘Korean Medicine’임을 알 수 있다. 

반면에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영문 홈페이지를 보면 Korea Institute of Oriental Medicine(KIOM)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세부내용에서는 한의학을 ‘Traditional Korean Medicine(TKM)’으로 표기하고 있고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은 PNU Korean Medicine으로 표기하고 있다. 

3-3  해외의 한의학 영문명칭 표기와 다른 국가의 전통의학 표기예 
2007년 WHO에서 발간한 국제전통의학표준용어집(IST)에 보면 한의학을  Traditional Korean Medicine(TKM)으로 적고 있고, 중국은 Traditional Chinese Medicine(TCM) 혹은 Chinese Medicine으로,  일본은 Japanese Traditional Medicine 혹은 Kampo Medicine(2003년부터 공식사용)으로, 대만은 Chinese Medicine으로 적고 있으며, 베트남은 Traditional Vietnamese Medicine(VTM)으로 표기하고 있다.

한편 국제학술지를 검색해보면 의학사, 의료정책, 의료사회학, 임상의학, 간호학, 실험의학 등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이미 한의학을 ‘Korean Medicine’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적어도 학술적인 분야에서는 ‘Korean Medicine’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4.  맺는 말 

이미 국내외적으로 한의학을 더 이상 ‘Oriental Medicine’으로 불러서는 안된다는 것이 명확한데 영문 표기를 변경하는 것을 망설이다가는 자칫 실기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과거 ‘漢醫學’을 ‘韓醫學’으로 바꾸는데 소모적인 논쟁과 기회비용이 있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번 영문 표기 변경은 빠른 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미 (사)대한의사협회에서 ‘Korean Medicine’을 상표등록신청했다가 반려된 사실이 있고 (주)아모레퍼시픽이 Traditional Korean Medicine(TKM)을 화장품류에 상표등록한 시점에서 더 이상의 망설임은 우리 것을 빼앗기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고 본다. 

회원의 한 사람으로 이번 대의원총회에서 대의원들의 현명한 결정이 있기를 기대한다.